<--되기>의 수행은 하나의 창작이라는 사건의 동력이 될 가장 큰 힘이 아닐 수 없다. 왜냐면, 그것은
창작의 탈/재/영토화와 창작의 주체는 어디에서 오는가/어떻게 구성되는가, 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기 때문이다.
--애희의
전시에 부쳐서
홍
명 섭
현대 예술 작업들의 특징은 바로 우리가 원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를테면, 예술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하는 것이 곧 예술이 '된다'는 사실을
일깨우고 있다. 길이 있어 우리가 길을 따라 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가는 곳이 곧 길이 되는 것이고, 거기서 우리의
예술이 탄생하는 것을 목격 하여야 한다. 길 없는 길을 가는 그것은 우리가 꿈을 꿀 수 있는 바대로 중층적으로,
사후적으로 결정 됨을 말한다. 심지어 창작자인 작가의 의도와 상관없이도 작업 스스로가 무엇이든 필요한 것이
된다는 말이기도 하다. 이것이 들뢰즈/가타리가 말하는 사용으로서의 "기계"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근대적 주체 개념에 갇혀 있거나 '가족주의적 욕망' 개념에 억압 받아온, 보편적이고 일관된
주체 중심적 작업이 아니라면, 외부와 어떻게 접속 하느냐에 따라 이웃한 항들과의 관계로 정의되는 그런
질료적인 욕망의 전투적 흐름이 바로 이런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작업이 작가의 보편적 믿음의 주체가 원하는 대로
의도-표현되고 움직여 가는 것이라는 환상은 착각이다. 작업이라는 것이 작가의 의도 대로 통제에 갇힌다는 것도 바람직
하지 못 하지만, 또한 작업 자체가 작가라는 주체와 유기체적인 조화를 가지는 것으로 착각하는 것도 금물인 것이다.
이를테면, 작업이 나름대로 작가와 어떤 자기동일성을 가지리란 믿음, 하나의 중심을 통해서 부분들을 통합하고 통일하여
부분을 전체화하는 것으로 총체성을 부여하는 방식에 믿음을 둠으로서 타자-관객을 나의 자아로 통합해버리는 셈인 (나의)
특권적 자아관이야말로 전근대적인 모습의 독재적이고 임의적인 발상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렇게 굳어진 감각을 바꾸고 신체적 리듬을 바꾸고, 삶 자체를 바꾸는 영혼의 치료법과 같은 다른 무엇이-"되기"라는,
일종의 "기관없는 신체"의 "잔혹극"은 시작 되는 것이다.
나의 중심으로 굳어진 주체의식의 낡은 습속의 환상과 횡포에서 벗어나려면, 무엇보다도 나는 나 아닌, 다른 무엇이
되는데 헌신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주체의 이동이라는 타자-되기를
위해서라면 먼저 타자의 시선과 관심에 노출되는/맏겨지는 <애완-되기>를 통해서 나를 "탈영토화"
할 수 있는지, 그래서 타자의 특정성이라는 장을 펼치는데 나를, 내 몸을 내 맡겨보자는 것이다. (애희의
다음 작업인 < pet-되기 >를 염두에 둔다)
나의 껍질을 먼저 벗는 것으로의 촉발이다. 그래서 "재영토화"를 통해 나를 바꿀 수 있다면----.
적어도, 바꿔 보는 한 때의 체험만이라도----.
나는 누구인가? 나라고 말하고, 분명히 나라고 알고 있는 습속의 이 주체가 어떻게 절대적으로 나와 다른, 소유할
수 없고 나로 환원되지 않는 타자와 맞닥뜨리는 상황이 어떤 식으로 일어날 수 있는가? 이 습관 속에 숨어있는 자아라는
것은 사르트르 말마따나 결코 의식의 통일성과 개별성의 원천이 아니라면 대체 어떻게 작동되는 것이 길래, 서로 작업들을
통해서 소통이 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가? 나는 과연 타자를 보면서 나 자신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만큼 타자를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지는 않는가. 이렇게 나의 주체가 멋대로 판단하는 것으로 스스로 주인인 나는, 나의 세계를
구성하고 나의 욕구에 따라 세계를 향유하고 관리하며 나 자신에게 몰두하여 끊임없이 나의 세계로 귀환하는 사유가
바로 주체적 존재양식이라 안심하고 있는데------, 타자의 효과란 이렇게 아무것도 아니란 말일까?
그러나 60년대 이후의 현대 철학은 우리를 일깨우고 있다.
주체, 그것은 하나의 아비투스, 하나의 습관, 내재성의 장 속에서의 하나의 습관, 나라고 이야기하는 습관이라고
일깨우는 것은, 대상에 대한 시각의 특권적 우위에서 초월적으로 발생하는, 나라는 중심 주체는 늘 타자를 나와 동일자로
멋대로 환원하는 점 때문이었다. 따라서 현대의 철학적 과제란, 결국 대상성으로 환원될 수 없는 타자성의 개입을
통해서 발생하는 주체를 그리고자 하였다는 말이다.
특히, 레비나스에게 타자의 출현은 나의 나됨, 즉 나의 주체화를 가능하게 해주는 것으로 나타난다. 즉 나라는 동일자로
결코 환원, 흡수되지 않는 타자가 있음을 드러내고, 그 타자에 대해 내가 가지는 윤리적 책임성이 나의 나됨, 즉
나의 주체성을 구성하는 근본성임을 보이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한편, 들뢰즈가 말하는 타자의 효과란, 내가 지각하는 각각의 사물과 내가 사유하는 각각의 관념의 주위에서 변두리의
세계, 즉 배경을 조직하는 것이라고. 대상에는 늘 가시화하지 않는 잠재적인 부분이 있는 것인데 그런것에 대한 앎과
느낌은 타자의 빛을 통해서만 가능 하다는 것이며, 말하자면 우리가 지각하지 못하는 부분을 지각하고 있을 타자의
존재를 전제하고서만 우리의 의식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체험하는 바와 같은 하나의 전체화된 세계를 체험할 수 있게
해준다고 말한다. 다시 말해, 타자를 통해서 이 전체화된 세계의 상관자로서 우리의 의식이 구성된다는 말이다. 타자의
눈은 가능한 빛의 표현이며, 타자의 귀는 가능한 소리의 표현이다. 타자는 나의 나됨의 규정에 개입하는 자여야 한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타자는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바와 같은 세계를 체험하는 우리의 의식의 근본구조를 가능케 해주는
셈이다.
타자는 나의 나됨, 즉 주체성의 발생에 시각적인 것, 곧 시선의 형태로 개입한다 할 때, 나는 타자의 시선 속에서
내 의지와 상관없이 시간적으로 뒤 늦게 탄생한다는 점이다. 또는, 주체의 개념마저 폐기하려드는 들뢰즈의 말마따나,
주체를 거시기로 대체하듯이, 해독하는 주체는 없고 오로지 해석의 다양한 활동만이 있는 것이다. 이런 활동은 활동의
주체 뿐 아니라 활동이 실행될 대상도 갖지 않는다. 오로지 활동이 주체조차 선택한다. 활동이 자아를 선택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주체 없는 철학의 과제는? 파편들 같은 사건들만이 있다. 따라서 이것들이 어떻게 정돈, 배열되느냐의 문제인데,
이는 그 특유의 "기계"의 기계성을 규정하는 것은 의미가 아니라 용법이고, 그 '사용'이 문제라는
바로 그 말이다. 프루스트는 우리에게, 자기 작품을 읽지 말고 그 작품을 이용하여 우리 자신을 읽어보라고 충고
한다. 그것은 타인들에 대한 효과인데, 왜냐하면 독자나 관객들은 예술작품이 생산해내는 효과들과 비슷한 효과들을
자기 내면이나 자기 외부에서 발견하기 시작할 것이기 때문이다. 요컨대, 예술작품은 우리가 우리 내면이나 외부세계를
바라보는데 사용하는 "기계"로서 이해될 수 있다.
어느 기간 동안 타자-되기라는 다소 엉뚱한 역할 바꾸기의 수행을 통해서 자신의 주체가
이동되는 경험을 통해, 타자의 시선의 개입 속에서 자신의 형성을 다시 목격하려는 애희 자신의 몸의 새로운 배열은
과연 어떤 자아의 "재영토화"를 가능하게 할까? 과연, 오이디프스라는 가족주의적 삼각형 안에
가두어 놓은 하나의 '돌봄'이라는 유형의 전근대적 욕망을 그는 어떻게 변용-재구축 하고
있는가?
2007,
3,
* 이상의 글은 주로 서 동욱 교수의 저서 ; "차이와 타자", (문학과 지성사, 2000)를
참조, 인용 하였음을 밝힘.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