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희 "작품(作品, works)"라는 말을 쓸 때 우리는 이미 유기적 완전체라는 비평적 명제가
함축된 의미를 알게/모르게 표명하고 있는 셈이다. 그런 유기적 완전체를 동경하는 "작품"이라는
개념에는 벌써 결정론적 세계관에 입각된 형이상학적 예술론이라는 통제론(아키즘, archism)에 억압당해 있는
것이거나 그런 미적 확정론에 암암리 승복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자가성(自家性)의 자폐적 존재로서 "작품"의 개념에 대해 새로운 비평적 범주의 용어가
되는 "텍스트"는, 그 의미의 형성계기를 인간(작가)이 아닌, 작업의 의미작용의 구조에 두고
있다는 점이다. 근대적 이성이 감싸고 있었던 폭력적 결정론(아키즘)이 작가 중심 작업의 완결성을 "works",
또는 "작품"으로 응집된 것으로 믿는 결과라면, 거기에는 근대적 의미로, 창조자의 노동가치 중심적
예술론의 지배 또한 받고 있다고 하겠다.
- 작업 스스로의 안과 밖을 헐기
따라서 결정론적 미학의 통제를 분열시키는, 그래서 작업 자신의 안과 밖을 넘나들고 가로지르는 "텍스트"로서의
"설치"는 유행을 타는 기법적 모드나 패션으로 보기에 앞서 하나의 래디컬한 전환적 태도-개념인
것이다. 설치미술이 한 때 급작스레 유행을 타는 듯한 현상도 께름칙하지만, 근자에 와서 그것이 마치 한물간 유행이란
듯 힐난의 눈초리도 우습긴 매한가지다(非然이면 非不然).
예술작품 개념의 통제된 의미차원(결정론)들을 가로지르고 빗겨가고, 미학개념에서 요소론들이 분열되는 현상은 결정론의
철학에 대한 항거이거나, 하나의 전환적 대안이기도 한 것이다.
철학적 결정론을 헤집고 틈을 내고, 성글게 나가는 하나의 다른 모습은 새삼스레 신체성을 구축하는 모습의 에너지일
수는 없을 것이다. 모든 결정론들을 삐걱거리게 하는 아나키스트적(an-achistic) 힘의 실체는 이미 그 자체가
비확정적(비결정론적)이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자신의 신체마저도 포기해가면서, 금세기 인간들의 정신적 결정론들은 흔들어 분열-표류하게 하는, 결정론의
규범들을 격파하는 아나키스트적 에너지는 자객처럼 자신의 신체마저도 담보로 하지 않을 수 없게끔 소모적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서, 근대적 의미의 결정론들이 그 인식론의 구성에 시간을 배제했다는 것, 선험성의순수성을 방해하는 것으로
본 시간의 속성, 실은 라오쯔의 명제처럼, 후천적 덕성 구성에 절대적인 시간의 요구(德, 蓄也)는 근대적 서구
인성론에 감추어진 폭력적 "결정론"과 충분히 대조되는 모습을 드러내 주고 있다는 점과도 무관하지
않은 것이다. 말하자면, 현대 과학적 인식론에도 수행적 덕성론이 상호작용한다는 점이다. 이런 점이 김용옥교수가
쓰는 "三間學"이라는 새로운 용어의 폭이 될 것 같다.
근대적 의미의 works(작품)에 反한 개념으로 in-stallation, 여기서 stall은 매점의 스탠드처럼
고정된 진열장을 의미하며, 동사형으로는 그것이 꼼짝달싹 못하게 하는 진퇴양난 지경에 몰아넣는다는 소리일 때, in-stall은
임자가 따로 없는 어떤 위치나 자리에 처하게 되는 일과적 경우를 말한다. 그것은 비고정적 위상의 의미구조를 보여
준다. 마치 데리다의 "차연"처럼 지연되는.
따라서 installation이라는 의미의 유입과정에서 "설치"로 단순히 번역되고 있는 현상에도
어지간히 문제가 걸려 있는 셈이다. 말하자면 설치보다는 차라리 "가설" 쪽인 것이다.
일시적 설치, 거기에는 시간(temporality)의 속성이 내포된 인식론이 개입된 형식이라 하겠다. 이를테면,
근대적 의미의 경계(구분)의 미학을 분열시키는 비결정론적 지속태로서, 통제된 의미차원을 빠져나간 works의 타자로서,
어쩌면 works보다 앞선 흔적으로서 in-stallation은 이제 비평의 언어적 범주까지도 삐걱거리게 하고
있다.
1996
커미셔너 ; 홍 명 섭
*본고는 1996년 대구 문예회관으로부터 의뢰 받아서 필자가 기획 했던 <instal-scape>
전시 서문이었음.
*"설치" 개념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는, 류병학씨가 글을 쓴 당시 전시회 부록으로 출판되었던
유인물과, 필자가 1987년 6월호 "미술세계"에 발표한 논문 <현대 미술에서의 '설치'
개념의 유형에 관하여; - 미술대상의 비결정성과 소멸의 미학("미술세계, 33호, 1987)>과
<칼 안드레의 장소; 수평에의 의지("공간", 286호, 1991)>를 참조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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