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업 pin-up 걸 girl -되기>는 핀-업 -되기와 걸 -되기 항의 익명적 접속이다.

* 무엇인가 “다른 것 - 되기” 위해선 현재 가지고 있는 것을 이용하고 낡은 습속의 감각을 변형시킬 수 있어야 하는데, <핀업-되기>와 <애희-되기>가 과연 어떻게 서로를 촉발-감응-변용 하면서 자기동일적 주체의 허물을 벗고 새로운 삶의 관계를 구성할 수 있을 것인가?

표현의 형식과 내용의 형식이 소통하는 것은, 서로에 대해 개입하며 서로의 상태에 변환의 요인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언표 내지 언표행위는 그 자체로는 비신체적이지만 신체적 상태에 개입하여 신체적 변환을 야기하는 것이라고 할 때, 여성/남성의 이미지(육체 이미지)도 남성/여성의 신체에 작용하여 남성/여성의 “신체적 변환”을 자극한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근래 청소년/소녀들의 신장의 변화와 더불어 우리네 토종 체형들과는 아주 다른, 말하자면 서구적 체형으로 변환하고 있는 현상은, 식생활의 변화라든가 주거생활의 변화에 기인하는 것으로 얘기 되곤 하지만, 우리가 미처 간파하고 있지 못하는 사실은, 아마도 모든 실제적인 것들의 본성은 우리가 실감하지 못하는 사이에 다른 종류의 삶이라는, 일종의 환경과의 새로운 구조적 접속(structural coupling)을 통해서 또는 형태공명이라는 현상(어떤 개체가 경험한 행동이나 형질의 영향이 형태의 장을 통해서 같은 종에 속하는 다른 개체에게 작용한다는 현상으로 형태발생원인에대한 새로운 가설)처럼 암암리 스스로를 변용시키는 유/무의식적 욕망의 힘으로 작용하는 것 때문인지도 모른다. 말하자면, 들뢰즈/가타리의 말로 하자면, 서로를 횡단하면서 서로를 변용시킬 “신체적 감응”을 만들어내는 현실적 <--되기>라는 욕망의 과정이 그것이다. 이것은 진화 개념과 대립되는 의미에서 함입(involution)이라는 개념인데, 진화가 통상 덜 분화된 것에서 더 분화된 것으로 나아가는 것을 말한다면, 이처럼 이질적인 어떤 것과의 결연 또는 짝하여 엉뚱하거나 전혀 새로운 혼성적인 무엇이 되는 <-되기>의 블록 속으로 “말려들어가는 것(in-volution)”이라는 의미에서 이다. 이를테면, 암/수가 결정되어서 태어나지 않는다는 어린 메뚜기들은 서로의 종을 먼저 바라다보는 힘의 밀도에 의해 수컷 성이 발생한다는 재미난 사실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이런 것을 두고 “금욕에 기초하지 않은 혁명”이란 것이 아닐까?

익명적 눈-요기, 또는 사물- 되기
육체의 이미지, 또는 성, 얼굴, 의상은 외연적 시선과 만나 주체를 분열시키는 익명적 환타지--웅얼거리는 기호들을 생산하는 “기계”가 된다.

가령, “여성”에 대해 흔히 우리가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전제하고 있는 여성, 하나의 중심 뿌리로 귀속시켜버릴 수 있는 여성이라는, 관계적 접속의 다양체라는 사실을 무시하고 유기적 통일체의 일부로 만들어지는 여성의 이미지 때문에, 자신의 신체적 힘과 에너지의 분포를 바꾸고 새로운 배치를 만들어 새로운 감응을 생산할 수 있는 <-되기>라는 “혁명”을 우리는 믿지 않을 뿐만 아니라, 차라리 억압하고 있었던 것이다.
일례로, 집단/남성의 무의식이 사회/역사적이라는 푸코-들뢰즈적 맥락에서 보자면 “의상”은 성적 욕망이 투여된 일종의 사회적 기표로 <인용>되고 있는 역사/사회적 현실에서 남성적 무의식을 편들어줌으로서 이 현실 비판을 뒤집어서 보여주고 있는 셈이었다. 나아가서, 보드리얄은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오늘날 여성의 육체를 대상으로 하고 있는 숫한 여성 잡지들은 그 <은폐된 공격성>으로 그들의 독자인 여성에게 자신의 육체에 한없이 집착하도록 하는 제안을 하고 있다고. 즉, 이 제안은 육체를 깊이 인식하기 위한 것이 전혀 아니며, 오히려 물신숭배와 구경거리의 논리에 따라서 육체를 외부로부터 다른 사물보다 더 윤기 있고 더 완벽하며, 또 더 기능적인 사물로 만들어내기 위한 것이라고. ---즉, 눈에 보이는 기호를 육체에 부각시키는 일인 것이다.
이후, 무의식적 남성의 표면에 새겨진 감각의 촉발과 재생산을 통해 남성적 집단 무의식을 해소하고 대리하는 장치로 핀-업이라는 가상 이미지는 일종의 물신으로 대신한다고 본다.

자, 그렇다면, 우리는 섹시한 기호학적 코드에 포섭된 남성적 시선들에(을 향해) 모든 여성이 성적 대리물 일 수 있다는/없다는 사실을 숨기기/비호하기 위해 <핀업 걸>이 놓여있는가? 아니면 그런 어느 점에 대한 냉소의 제스쳐인가?
또는, 오이디프스적 억압을 당연시하는 '가족주의'의 금욕적인 태도에 대한 저항인가?
아니면, 마치 우리가 추구하는 환타지처럼, 아마도 이 세상이야말로 환타지라는 사실을 숨기기 위해서 만들어내는 몸부림치는 힘의 반작용인가?

그렇다. '가족주의(오이디프스)'의 무의식적 욕망의 억압은 섹스의 고정될 수 없는 이웃 항들과의 구조적 접속의 욕망과 섹스의 새로운 배치를 언제나 경계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억압은 다양체로의 섹스의 새로운 탈주와 작동을 무시하거나 변질된 것으로 매도하는 윤리로 우리의 기억을 지배하여 왔던 것이다.
이런 바탕에서, 여성 이미지의 영역에 대한 "탈영토화"가 일어날 수 있는 가장 타협적 일탈 지점에서 섹스는 자본과 소비의 욕구사이에서 은밀하게 의상과 접속을 이루고 있었던 셈이다. 역설적이게도 성을 은폐하는 형식과 성을 발산하는 욕구를 동시에 모호하게 하면서 육체와 의상은 각기 분절되고 있었던 것이다. 육체의 이미지는 가능과 불가능의 사이에서, 금기와 욕정 사이에서 또는 자본과 사회적 무의식/환타지로 작동하는 것이다.
욕망이 거처하는 육체가 가지는 본래의 의미의 성욕과는 구분되는, 교환 욕망의 기호를 매개로하는 에로틱한 육체를 두고 보드리얄은 더 이상 본래의 의미에서의 육체가 아니라 하나의 기호요, 시뮬레이션 형태라고 말한다. 이런 간극에서 육체는 에로티시즘과 자본 사이에서 사물화로 계열화하는 "소비-기계"가 되는 것이다. 의상의 이미지는 성의 의태가 되고, 오히려 육체가 의상을 위장한다.
하지만 들뢰즈 말로, 우리의 육체는 우리의 외부와 어떻게 접속하는가에 따라 무한히 흐름을 달리 할 수 있는, 이웃한 항들과의 관계들로 재/정의되는 그런 질료적인 욕망의 흐름인 것이다.
특정한 하나의 삶의 방식에 사로잡혀 사는 많은 사람들의 '가족주의적' 양태, 하나의 중심을 통해서 부분들을 통합하고 통일하는 국가주의적 관습-- 이런 사고방식의 획일적 독재라는 파시즘이 우리의 육체의 기능과 위치를 고정시키는 그런 유기체의 질서는, 모든 욕망은 본질적으로 가족적인 욕망이 되고, 모든 성욕이 가족적인 공간 안에서 오이디프스적 욕망이 되기 때문에, 18세기 후반 이후 가족주의적 욕망이 탄생한 후 가족(가정)이 “배타적 장소”가 됨에 따라 부부의 성적 발산은 가족적인 욕망 배치를 위협하는 가장 무서운 적으로 등장한다.
그러나 들뢰즈/가타리에 의하면, 욕망이란 프로이트가 말하는 것처럼 가족적이고 성적인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사회적인 것이다. 이미 그 자체로 사회적인 수많은 욕망들을 굳이 가족적이고 성적으로 볼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오이디프스라는 삼각형 안에 가두는 것은 어떤 하나의 불변적 본성으로 모든 것을 설명하고자 하는, 일자로 모든 것을 포획하려는 서구 형이상학의 오래된 시도를 반복하는 것으로 나타난다고 한다. 또한, 정신분석의 둘 째 과오는 그것이 성욕과 재생산의 분리를 완성했을 때조차 여전히 완고한 가족주의에 사로잡혀 있다는 것이다. 이런 서구적 가족주의의 탄생은 200여년 밖에 되지 않은 인류의 역사적 단계 속의 한 이데올로기란 점이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들의 사회적 욕망이란 어떻게 분절되고 있는가?
문제는 우리들의 사회적 주체들이 어떻게 교환되고-배치되고 있는가? 오늘과같은 이미지 과잉 소비 사회에서 사회적 자아란 무엇이어야 하는가?

타자의 <시선> 속의 <나>의 분열, 또는 탈 주체의 기호들
주체 철학이 쇠퇴하는 현대사회에서 <나>라는 규정이란 무엇이고 <나>라는 기호는 어떻게 교환되고 있는가? <나-되기>는 가능한가?

우리의 주체성을 구성하는데 타자의 장이 작용한다는 사실을 선구적으로 발견하였던 사르트르가, “자아란 결코 의식의 통일성과 개별성의 원천이 아니다”라고 깨우친 이후, 현대철학은 유기체의 기관인 눈이 지지해주는 시각성으로부터 주체성의 발생을 기술하기 시작하였다. 즉, 타자의 시선이 나의 자아가 탄생하는 장소라는, 시각의 상관자로서의 장을 구성해준다는 것이다. 이 때, 타자의 시선이란 나의 어떤 힘도 미칠 수 없는 지각 불능, 대상화 불능, 규정 불능, 소유 불능성을 함축한다.
서구 현대철학자들이 주체의 구성을 전적으로 눈이라는 기관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에서 회의를 제기하는 들뢰즈 이지만, “타자의 효과란, 내가 지각하는 각각의 사물과 내가 사유하는 각각의 관념의 주위에서 변두리의 세계, 즉 배경을 조직하는 것”이라고 한다. 따라서 들뢰즈는 타자를 선험적 타자로 보면서 <가능 세계의 표현>, 혹은 <지각장의 구조>라고 정의한다. 다시 말하면, 타자의 눈은 가능한 빛의 표현이며, 타자의 귀는 가능한 소리의 표현으로써 우리의 지각을 보증한다는 것이다. 이렇듯 타자는 공간성과 시간성이라는 두 가지 측면에서,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바와 같은 세계를 체험하는 우리 의식의 근본 구조를 가능케 해준다. 다시 말해, 타자를 통해 공간적- 시간적으로 질서 지워진 이 세계의 상관자로서의 우리 주체성이 정립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우리의 주체적 시각 내지 지각 장의 형성에 타자의 눈-시선이 절대적으로 선행 작용하고 있다는 철학적 깨우침은, 우리의 주체적 시선의 분열과 나아가서 주체 없는 파편들같은 사건들과 그것들의 배열이 최대의 과제가 되는 것이다. 현상학자들처럼 가장 원초적인 체험을 이루는 것으로 알았던 시각적인 것이 우리의 주체를 일방적으로 수립하는 것이 아니라면, 과연 우리의 시선은 우리의 주체 형성과는 어떻게 상관성을 갖는 것인가?
권력관계가 언표와 가시적인 것을 매개한다고 본 푸코는 우리의 시선은 근본적 체험이 아니라 일종의 지식이라고 본다. 시선이 지식이라는 것은 시선의 배후엔 무엇인가 시선보다 우선적인 것이 도사리고 있다는 뜻이다. 오히려 언표가 선행하며, 이 언표에 의해 시선은 규정된다는 말이다. 말하자면 “시선은 언표체계에 의해 규정된 지식”이다. 가령, 사물들을 유사한 것으로 보거나 동일한 것으로 보거나 유비적으로 보거나 서로 다른 것으로 보거나 하는 것은 원초적인 체험이 아니라, 유사성, 동일성, 유비, 차이성 등 언표적 개념 체계에 의해 규정된 지식일 뿐이라고 한다. 즉, 푸코에게 시선은 원인이 아니라, 언표 체계의 결과물이었다.

모든 존재의 속성들은 서로 환원 불가능한 차이만을 지닐 뿐이라는 들뢰즈는, 속성들은 서로 우월한 관계를 맺는 것이 아니라 서로 평행적일 뿐. 말하자면 빛이 존재하고 언어가 존재할 뿐, 이 둘은 각각 고립적이라고 한다. 이것을 들뢰즈는 이접, 또는 배타적 분리라고 부른다.
그렇다면, 시각보다 앞서는, 시각을 규정하는 가장 근원적인 최종 지반으로서의 언표 체계는 어떤 성격의 것인가?

누구나 스스로 핀-업 되기, 또는 익명의 이미지에 기생하는 주체들
익명의 거대한 언표 덩어리가 더 이상 제거할 수 없는 최종적인 <사실>이자 주체적인 대용물로써 <말이 있다>는 것은, 주체를 대체하는 것이야말로 익명의 중얼거림일 뿐이란 것이다. <거시기>라는 분열된 자아들이란 모든 형태의 유기체화에 도전하고 싸우기 위한 프로그램으로 나타난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누가 이 다양한 익명의 기호들을 해독하는 주체인가? 감상의 주체는 어디 있는가? 오로지 다양한 무엇을 해석하는 다양한 활동만이 있다고 들뢰즈는 말한다.
이런 활동은 활동의 주체 뿐 아니라 활동이 실행될 대상도 갖지 않는다. 기호를 해석하는 주체는 없고, 오로지 각각의 해석하는 활동이 있는데, 그 활동이 매번 활동의 주체조차 선택한다는 것이다. 활동이 자아를 선택하는 셈이다.
언표의 주체란 그 내용물이 하나도 없는 익명의 우리, 누군가, 혹은 그것-거시기-이기 때문이다. 이제 고백해야 할 내면도 고백해야할 주체도 없으며, 따라서 감시의 대상도 없다. 고백의 감시 기제를 무화시키는 전략도 없다.
익명의 거대한 사건 덩어리들---- 모든 인격주의, 심리학, 혹은 언어학에 반대하여, 사건들은 제3자, 심지어 특정한 제4자, 비인칭 혹은 그것의 개념을 장려한다.

부르디외는 아비투스로 인한 우리의 감성의 계급화를 우려하고 있지만, <애희>는 자신의 분열된 자아상-<핀업 걸-되기>의 실천을 통하여 우리 스스로 다중 이미지로 타자화 된 기호의 생산에 편승함으로서 집단적 익명적 소통의 가능성을 보이고 있다. 이야말로 오늘날 우리의 기호 소비를 자축하는 다중적 자아관을 편들어 줌으로서 우리의 일방적 판단 습성으로의 주체--“의식의 통일성과 개별성”이 되어온 근대적 주체의식을 뒤집어, 우리의 눈을 앞지르는 익명적 언표들과 이미지들의 재/배치와 활동들이 어쩌면 새로운 소통의 장을 형성할 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번에 애희의 작업을 두고 글을 쓰게 되면서, 무엇보다도 내가 먼저 "들�l즈-되기"를 흉내/경험한다는 사실이 나에겐 흥미로운 것이다. 그것은 들�l즈/애희를 접속하면서 그들도 나도 아닌 또 다른 어떤 '되기'를 경험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상의 글은 본인이 들뢰즈/가타리를 공부하면서 의존하게 된 다음과 같은 텍스트들로부터 온 것이다. 물론 본인이 이해하였던 바를 응용 기술한 것 외에도 다음의 저작들 속의 글을 압축, 인 용, 짜깁기를 하였던 것이 있다는 점도 밝힌다.
                                                                                                   2004

*천개의 고원, 들뢰즈/가타리, 김재인 역, 새물결
*노마디즘, 1권, 2권, 이진경, 휴머니스트
*차이와타자, 서동욱, 문학과 지성
*들뢰즈와 가타리, 이정우 역, 로널드 보그, 샛길
*근대적 시-공간의 탄생, 이진경, 푸른숲
*들뢰즈의 철학, 서동욱, 민음사
*소비의 사회, 장 보드리야르, 이상률 역, 문예출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