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의 주문은, 작가로서 미술비평을 보는 입장과 젊은 비평가 지망생들에게 기대하는 것은 무엇인가인데, 나의 리플은
다음과 같다. 웃기는 말로, “평론가-되기의 10계명”이라고 해두자.
1- 로잘린 크라우스처럼 지적으로 번득이지만 지랄 맞게 오만하고, 김용옥처럼, 인격적이길
포기하라.
2- 인격적이길 포기한 김용옥이 못된다면, 김수영 급의 섬세한 증인 감각과 소심한
양심과 양식을 지켜라. 지적 우월감과 지적 횡포를 불사할 때 오는 비난과 고립감이 두렵다면, 김수영처럼
당대의 저항과 양심 사이에서 갈등하는 소심함으로 웬만한 이익으로부터 소외될 수밖에 없는 팔자의 길을 가라. 이런 사례의
평론가 김현도를 당신은 주목하고 있는가?
3- 가능한 한 현학적이어서 당신의 글을 아무나 읽을 수 없게 하라.
그래서 아무에게나 평이하게 이해된다는 좋은 인상의 글을 수치스럽게 생각하라.
좋은 글, 잘 쓴 글이란 누구에게나 이해가 잘되게 쉽게 쓰여진 글이라는 통념이 틀린 것은 아니라면, 그 통념을 깨는
정반대 유형의 글 또한 아무나 쓸 수 없는 글이 틀림없다. 정말 남의 글과 생각을 존중하는 양식과 양지를 겸비한 입장이라면,
당신의 글이 아무리 어렵고 못되도 힘들여 쓰여진 그것을 두고 당신을 탓하지 않을 것이다. 당신의 것을 탓하는 사람은
자신의 짧은 식견을 먼저 문제삼을 수 없게 길들여진 사람이기 때문이다. 적어도 글을 쓰고자 하는 사람들이라면 이런
의식들을 상대로 공부하는 뜻을 펼 칠 수는 없지 않은가? 일찍이 박애주의자이자 평화주의자로 그 실천과 명성을 날렸던
대 철학가 B. 러셀도, 공부하는 젊은이들에게 충고하기를, 젊어서 세상을 상대로 자신의 생각을 펼치고자 할 때는 가능한
한 현학적으로 써서 자신보다 나은 전문가를 상대해야지 섣부른 사람들의 이해를 구해서는 안 된다고 역설한 바 있다.
4- <내로우 스페샬리스트>가 되라. 푸코식으로 말해 <스페시픽
인틸렉츄알>이 되라. 가령, 푸코가 서구의 사회문화사를 뒤집어 논 그의 계보학을 두고, 자신은 결코 이성과 진리를
대변하는 보편적인 지식인이 아니라 특정한 분야를 전문하는데 불과한 스페시픽 인틸렉츄알이라고 하는 역설적 고백에서 보아야하듯,
“스페시픽”은 특별함이 아니라, “이질적”이라는 말이다.
5- 심사를 받고자 하지 말라. 응모하는 글을 쓰지 말라. 누가 보아도
좋은 글이란 것이 있을 수 있을까? 또는, 누가 봐도 좋은 글이 과연 내가 쓰고자 하는 글인가? 지랄 맞게 성격 있는
뛰어난 글이 과연 보편한 공감을 줄 수 있을까? 무엇보다도 공감의 스타일을 따로 꿈꾸지 말라. 스타일은 그 자체가
강력한 감성적 수준의 메시지이기 때문이다.
6- 될 수 있는 대로 파벌을 조장하고, 많은 사람을 사귀지 말라.
비판의 칼을 쉴 새없이 갈아야만 하는 강준만이 그랬다. 그는 개인적으로 사람들을 사귀게 될까봐 도시를 배회하거나 모임에
참여를 두려워한다. 누구를 만나도 사적으로는 너무나 관대하게 접수하는 자신의 품성 때문에 “대면의 윤리”를 포기했던
것이다. (물론 류병학 처럼, 우리의 문화제도 전반과 이 화단의 모든 문제에 무차별적 관심으로 사람의 유형을 가리지
않고 천착하는 근성으로 모든 것을 긍정하게 하는 자신감과 끈질긴 희망을 발휘하는 반대급부도 가능하지만, 류씨의 윤리나
기질 상 본격적인 평론가이기를 거부하는 그 몸씀을 고려하자.)
7- 비평이 또한 창작임을 잊지 말라. 비평이 창작에 기생하거나, “나란히
사이좋게(homology)” 갈 수는 없다. 비평과 미술은 서로 “이질적인(paralogy)” 스타일의 창작물이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비평은 언어나 감성부터 미술창작과는 다른 위상에서 건조된 기호이다. 창작물보다는 비평이 더한 카리스마를
필요로 한다. 카리스마는 이웃에 호감을 줄 수는 없지만 추종자를 만든다는 말처럼, 비평은 곳곳에서 이질적 모반과 충돌로
작가 의식의 분열, 확산을 도모하는 횡포를 불사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창작과 비평의 대화란 모종의 소통이기 앞서
느낌 영역의 마찰이 아닐 수 없다.
8- 작가를 이끌어라. 비평의 욕망은 작가(창작)를 생산하는 것이다.
비평의 시간이 창작을 뒤쫓고 있는 형국이지만, 항상 창작의 시간을 앞세우고 가는 것만은 아니다. 비평이 비평을 통해서
창작의 선구적 특질들이 새롭게 개척된다는 사실을 또 다르게 창조해 내고 있는 현장을 만나게 된다면, 오히려 비평의
시간은 창작보다 얼마든지 앞서가는 것을 알 수 있다.
9- 이 화단을 혐오하라. 주례사의 따끈한 답례의 유혹을 떨쳐라. 이런
인간적인(?) 답례가 전문적 비평을 망쳐왔던 현실임을 직시하라. 알면서도 거절 못하는 이해관계가 이 땅의 비평의 풍토를
타락케 한 사례들은 허다하다. 대학 전임이 되기 위해서, 또는 돼서도, 주례비평을 자처할 수밖에 없었던 전과로 인해
딱한 평론가들의 팔자야말로 바로 스스로 판 자기무덤이지만, 유명작가, 선배 교수들의 행태들을 지켜 보았는가. 이 화단을
혐오할 줄 아는 자만이 이 화단에 처절한 관심을 걸고 분노의 미학을 구사할 수 있을 것이다.
10- 많은 작가들을 혐오하라. 이 화단에 서식하는 많은 작가들을 혐오할
줄 알아야 한다. 작가들에 대한 강렬한 혐오감의 발현 없이 관심을 두어야 할 작가를 발굴할 수는 없다. 길 없는 길을
가라. 일찍이 생 떽스는, 사람들이 만들어 논 길, 즉 인도야말로 인간을 수세기 동안 기만하고 있었다고 간파하였다.
길은 가장 안전한 곳과 안락한 곳을 따라 닦여지게 마련이니까. 정작 우리가 탐험해 봐야할 곳에는 길이 없었든 것이다.
홍명섭(작가,
한성대학교수)
* 2004, "아트 인 컬춰" 8호에 기고 된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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