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마을 공동체 미술
원골 축제 - <예술과 마을> 에 부치는 단상
홍 명섭(미술인, 한성대학교 교수)
내가 아는 원골의 아저씨, 아주머니들은 한결 같이 노래를 잘 부른다. 요즘 웬만한 사람이면, 도시에서나 농촌에서나
가라오케 기기가 보급 되어 있어 노래를 잘 부르지 못하는 사람이 없을 정도이나, 이 원골의 주민들은 그런 바탕에서
잘 부른다는 뜻이 아니다. 이건 기교나 세련 정도를 칭찬하는 뜻이 아니다. 노래에 감정이 이다지도 풍부하고 걸맞게
실릴 수 있을까란 점에서 전문 가수에게서 느낄 수 없는, 사뭇 다른 감흥이 넘친다는 점이다. 왤까? 여기에 대한
답은, 이미 작년부터 마을 주민들에 의해 호소되고, 글로 엮어지고 있는 두꺼운 <예술과 마을>의 자료집에서
면면히 들어나고 있다. 그야말로 농촌 생활의 애환을 이렇게 잘도 그려내고 토해낼 수 있을까. 오죽하면 이들 주민의
정서가, 그 동안 이 마을에 스며든 한 외진 ‘화가 선생’의 예술적 태도에 감응하여 이런 전대미문의 '마을 미술제'를
이루어 냈겠는가. 말하자면, 한 외딴 미술인의 정신과 이 마을 농심의 감성이 상호 교감하여 결실을 이루게 된 것이다.
나 또한 원골에서 열리는 <예술과 마을>이라는 '농촌 미술제'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은, 물론 내가
평소 흠모하는 선배 작가 임 동식으로 비롯된다. 20년 지기라 할 수 있는 임 선배와는 그간 생각을 같이 하거나
달리 할 때나, 멀리 또는 가까이서 서로를 격려하거나 소원해 하면서 지켜보아오고 있는 사이이다. 십 년 만에 독일
유학에서 돌아온 임 선배님이 원골에 정착한지 수년이 지나면서 원골 마을에 어떤 감응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내가 근래 임 선배님의 근황에 새삼스런 흥미를 가지게 된 계기가 바로 <예술과 마을>이라는, 획기적이고
생기 있는 마을 ‘공동체 미술’ 개념의 실현이란 사실이다.
몇 차례 걸친 원골의 미술제에 나 자신이 참여 작가로, 또는 그 동안 지켜보아오면서 나름의 소감이랄까, 하나의
단상이 떠오르고 있었다. 그 동안 알게 모르게 원골 마을 여러분들을 통해서, 우리의 전통적인 농촌 특유의 곱고
따뜻한 마음과 특히 마을 행사를 위한 열정들을 느끼면서, 나는 그럴수록 자꾸만 어떤 ‘문제’가 자라나는 것을 발견한다.
딱히 이것이 문제라고 선명하게 집어내기는 어려운, 그만큼 애매한 것이어서 내가 오히려 긁어 부스럼을 만드는 것은
아닌가 하는 염려 속에 망설여 온 것이기도 하다. 이것이 무엇인가, 무엇이 문제란 말인가.
이 조그만 농촌 마을 주민 모두가, 활달한 서 총무님의 표현대로, “긴 잠에서 깨어나 희망찬 내일을 향해” “자연을
벗 삼아 농사지으며”,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흙과 씨름하고”, “이제는 작은 풍요로움도 감사할 줄 아는 소중한
삶을 위해” 의연히 “도시를 등지고 고향을 선택하는” 결단은 긴 갈등의 뒤끝 이였다는 자기 고백적 사실을 들으면서,
내가 문제시하는 것은 얼마나 하찮은 것인가를 뉘우쳐 보기도 한다.
그러나 아니, 바로 그렇게 때문에, 오늘날 누구에게나 외면당하는 농촌 현실을 이 마을 분들이 이다지도 성실하고,
소박하고 아름답게, 새로운 희망으로 끌어안으려는 마음가짐에, 예술이라는 고도의 작위적 문화 행태가 끼어들 때,
부작용은 어떤 것인가 하는 문제를 우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말이다. 왜냐하면, 평생 자연미술을 표명하는 임선배님이
평소 고취하여 온, '누구나 예술을 행한다’와 나아가서 주민들을 고무시킨, ‘농사가 곧 예술’이라는, 평정 의지는
무/차별의 예술적 자의식을 부르게 된다는 그 습성에서 볼 때, 예술적 관념으로부터 자유로움이라는 어떤 천혜가 자칫
손상되기 쉽다는 점이다. (자의식이 강할수록 차이는 대립으로, 차이는 원한의 반작용적인 힘을 불러일으킨다는 점에서,
즉 차이의 극복이나 차이의 초월을 동경하거나 조장하게 된다는 말이다. 그러나 비극이 차이에서 오기도 하지만 기쁨은
그 차이를 긍정하는 데서 생긴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비유하자면, 법 없이 살아도 될 사람에게 있어서 법에 대한
의식화는 모든 행동에 법적 자의식을 불러올 수 있다는 말이다. 이는 새삼스럽게 법에 대한 과잉 의지나 저항, 또는
과장 되거나 미진한 차이의 해석으로 법을 논하는 부자유스런 관념을 싹 틔우게 될 수 있다는 점이다. 법 밖에서
노닐던 자유로움이 어느덧 법안에 갇힌 형국이 되고 만다. 어떤 형태로든 예술적 성취는 예술적 자의식의 대가를 치룬다는
점이다. 여기에 넓은 의미에서 교육이라는 문화화 과정의 인위적 관문의 역할이 있다. 다시 말해 예술이 무엇인가(어떻게)를
알려고(해결하고자) 하는 번민의 삶은, 그러한 삶의 ‘끊임없는 새로운 선택’으로만이 진실 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이런 삶은 어떠한 번민이 온다고 해서 손을 털거나 피하는 것이 행복이 아니요, 위안이 온다 해서 들떠서 누구에게나
권하는 것으로 진실이 될 수 없다는 점이다. 미술적 성취나 행각이란, 작품을 ‘작품답게' 하는(너도나도 '작품’을
한다는 의식) 그런 언저리에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우리가 작품이라고 이해하고 숙지, 안심하는 그 범주를
또다시 거스르고 위반할 수밖에 없는, 비평적 자의식의 표류로 보아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하여, 작가는 다시 길을
떠나는 차비를 차리는 것이다. (부랑자가 따로 없다.)
또 하나의 문제라고 생각되는 점은, 모든 자연스러움은 그대로 ‘지속’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언젠가는‘문화화’가
일어나게 마련인데, ‘언제’ 문화화를 맞이하느냐와 ‘어떻게’ 문화 화를 치르느냐가 복합적으로 물려 있을 따름이다.
자연이란 이미, 우리가 말하는 자연 대상은 이미 어느 모로든 ‘문화 화 된’ 자연이란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말하자면 우리에 의해 대상화(경배나 착취, 소용과 재료화) 된 자연인 것이지, ‘더불어 거기 있는’ 자연은 없다고
보아야 한다. 즉, ‘인간화’된 자연, 내가 아름답게 바라다 보는 자연이지, 내 의식 너머의 자연 그대로의 자연은
있을 수 없다. 자연이란 말 자체도 이미 서구적으로 근대화된 개념의 번역일 뿐, 본래의 天-地를 지시하지는 못한다.
여기에 덧붙일 하나는, ‘자연이 아름답다’, ‘자연을 사랑 한다’는 등의 언표 조차도, 그런 언표를 사용하게 되는
나의 입장-취향, 즉 나름으로 ‘계급화된 감수성’의 표출이거나, 관념적으로 이해하는 모습의 투영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우리가 알고 있는, 우리 주변의 자연은 ‘자연’이 아니다. 우리의 ‘필요’와 ‘사용 가치’에
의해 인지되고 재단되는, 생산과 증식의 대상적 범주일 뿐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자연이라는 말을 융통성 있게 사용하면서,
암암리 편리한대로 응용하고 있다. 자연 미술, 자연 환경, 자연 보호, 자연 사랑, 자연으로 돌아가자, 자연을
노래한다, 자연 재해, 자연인, 자연주의, 자연 식품 ---
‘자연’은 전통적으로 천-지를 가리켰다. 오늘날 우리가 곧잘 사용하는 '자연 환경'이라는 의미의 자연은 ‘자연’이
아니었다는 점을 상기하자. 물론, 그동안 우리는 한없이 소박한 성정아래서 자연의 낭만적 쓰임새를 말해왔다. 그
밖에 자연이란 수식은 ‘제 스스로’라는 형용에만 쓰여야 할 뿐이다. 따라서 ‘자연 미술’이란 말이, 저절로 되는
미술, 저절로 된 미술이라는 말의 범주로 사용 된다면 할 말은 없다. 그러나 본래 천-지를 가리키는 자연이 인위적
미술과 조합한다면 하늘과 땅이라는, ‘우주적 관념’의 미술이 되어야 할 것이다.
또 다른 문제 하나는, 오늘의 시장 지향적 경향이라 할 우리들의 자본논리, 크게는 시장논리가 마을의 단위 축제의
지향 점과도 언젠가는 만날 수밖에 없는, 피치 못하는 자본주의적 현실이 소박한 농촌이라고 해서 예외가 없으리라는
사실이다. 순박하고 아름답던 마을예술제도, 마을의 지역적 특화 이벤트로, 미구에 문화자본 논리로 경영이 될 것이란
점이다. 현대는 모든 것이 경영되고, 자본이 된다는 경험과 유혹을 뿌리치기가 지극히 어렵다. 우리는 주변의 개발
논리와 문화행사가 문화적 자본으로 경영 되면서, 사실은 우리의 본래 취지와 의미를 거스르는, 그래서 우리의 인심이
이해관계로 갈라지고 흉흉해가는 사태를 얼마나 목격하여 왔던가. 물론 문화가 자본이 되는 것이 현실이고, 자본이
될 수 있다는 것에는 어떤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 오히려 그렇게 되길 바래야 하지 않는가. 왜, 도시만 문화적
자본을 확보하고 누려야 하는가. 이런 점에서라면 오히려 우리의 열악한 농촌 경제 현실을 두고 볼 때, 지금 농촌에서야말로
문화적 자본이 될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심도 있게 모색할 계제이기도 한 것이다.
부디, 원골의 넉넉하고 아름다운 농심이 <예술과 마을>이라는 새로운 문화적 공동체 개념의 전환적 기폭제를
만나, 농사라는, 경제와 삶의 터가 일치된 ‘터 문화’를 이루는 속에서 일상의 예술적 감흥과 생기를 배양하여,
삶과 예술적 감흥의 장소가 따로 있거나 멀리 있지 않았다는 발견으로 당초의 취지를 일관되게 살려, 이제는 도시
문화생활이 잃어버린 특수한 정서를 문화적 자본으로 키우는 데 주민 모두가 보다 멀리 내다보는 안목을 견지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그래서 오늘날 하나의 마을이라는 전통적 공동체 문화가 어떻게 우리 일상의 경제적 삶의 터와 상호 창의적으로 엮어
나갈 수 있는지 보고 싶다.
사족 ; 서 정식 총무님, 농기구를 들고 제발 ‘예술을 생각’하진 마슈. 그러다가 발등 찍히 것시유. “농사가
곧 예술”이 아니냐는 말은 그냥 상징적으루 만 생각 허셔야지, 곧이곧대로 믿으시면 자부심에 뿔나유. 농사는 농사지유.
말하자면 우리들 사이에 차이를 가져오는 적극적인 힘이 뭔가를 넉넉하게 허락을 하려고 할 때야말루 우리 사회가 제
얼굴들을 들고 신나게 살 것이 아닝감유. 오히려 농사가 농사일 때 예술 못 지 않컸슈? 농사도 별거이기 전에 일상
생활이듯, 예술도 별건 아니지유. 농사는 농사지유. 손님은 손님이고 가족은 가족이지, 어디 ‘손님을 가족처럼’
모시는 게 예우라고 볼 순 없듯이, 농사가 어디 예술 눈치 볼 필요 있능감유? 땅을 흥겹고 풍성하니 경영 할 수만
있다문 말이유. 농사가 농사로 살아남을 때야말루 거기에 농사의 자존심이 있고, 그 모습이 또한 생기 있는 게 아닝감유?
그렁게 모든 것이 농사를 닮아야 하지 않겠는가 말이유. 다만, 농사도 예술처럼 외로움을 어뜨케든 신명나게 버팅
길 수 있을까만 연구해야 지라.
2001, 8, 15,
사족에 발톱 -
이 글을 끝내고나서 며칠 후 MBC 지역 방송에서 내보낸 원골 리포트(8월 20일,10시 30분 방영)<예술이
별건 감유>를 재미 있게 보았다. 시골 농촌 주민들이 이렇게 흥겹고 발랄하게 미술작업과 친숙해질 것을
어느 누가 예상이나 했던가. 이것은 정작 임 선배님 자신도, 마을 주민들 스스로도 짐작하지 못했으리라. 도시에서도
미술작업이란 미술관에 격리되어 있는 것으로 알기 십상인 것이다. 이런 점에서도 원골의 성과는 가히 일상생활 속의
새로운 학습현장의 한 모범으로 떠오를 만하다. 그래서인지 전국 각지에서 찾아든 관객들의 수가 헤아릴 수 없다하니,
원골은 시쳇말로 전국에서 가장 뜨고 있는 농촌마을 임을 자축할 일 임에 틀림 없다. 그러나 이런 열화같은 주목과
관심이 일회적인 호기심만을 자극했던 매스컴의 그늘로 시들어버릴지, 과연 지속될 만한 설득력 있는 체험을 이끌어
낼 수 있을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앞으로의 문제는, 이런 활기와 환호의 에너지를 어떻게 감당하고 축적하여 이끌어
갈 것인가를 생각할 때, 이제부터가 어려운 농촌문화의 공동체적 운명이 달려 있다고 본다.
여기서 이 마을이 거두어낸 가장 중요한 사실은 농사가 곧 예술이 아니겠는가 하는 쟁점이 아니라, 미술작업이 이
원골을 문화 공동체(살림 공동체)로 엮어내는 계기(깨우침, 친화력)가 되었다는 점이다.
농사가 예술일 수 있다는 생각은,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농사를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농사가 예술의 문맥 속에서
새로운 생명력이 넘치는 모습으로 드러날 수 있다 데 있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미적 감성이 어떻게 자연(생명력)과
조응하고 생활에 반영되는지를 아는 가운데 우리의 일상적 미적체험의 중요성을 깨닫게 될 것이다. 가령,
제아무리 자연이 빚어내는 오묘한 조형적 질서라도 그것의 아름다움을 느끼는, 즉 아름답게 보고자 하는 마음 없이는
조형 현상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따라서 자연은 우리의 관심과 의문 방식에 따라 그렇게만 대답해 주고 있다는
의미에서, 미적 체험이란 나의 지속적 호기심과 흥미의 반응에 다름 아닌 것이다. 이를테면 우리의 정신은 우리의
외부에 있는 자연 세계의 수많은 부분의 반영으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하여, 모든 생명체에는 스스로의 이유를
갖는 구조, 형태, 색을 띠게 마련이기 때문에 이런 생면 현상을 바라볼 때, 우리는 오랫동안 고정되어온 인간 중심의
언어적 사고에서 벗어나 ‘생명 문화 공동체 의식’과 자연 친화적 인식을 일깨울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이상과 같은 취지와 염려 속에서 나는 이와 같은 제안을 하고 싶다.
우선, 농사의 현장이나 자연현상 속에서 현대미술과 닮았다거나 비슷한 현상이 있다고 해서 미학적 의미를 부여하는
일은 일시적인 정서 환기 이상으로 서로를 매우 공허한 소박주의 취향으로 전락하게 할 우려가 있다고 본다. 여기에는
간단치 않은 상호적 배후 문맥의 탐색과 그렇게 단순하게 짚어 볼 수만 없는 문화적 생태의 의미들이 무시되거나 걷돌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 생성의 내재적 문맥들의 흐름들을 무시한다면 이 세상은 무슨 또 다른 의미가 가능 할까.
서로 얽히고 설키는 모습도 바람직 할 수 있겠지만, 서로 마주 바라다 볼 줄 알고, 바라다볼 수 있는 각자의 거리와
입장이 보다 소중 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농사를 아무나 흉내 내서 되는 것이 아니듯, 미술도 그냥 흉내로 되는 문제는 아닐 것이다. 아니, 흉내는 누구나
얼마든지 낼 수 있겠고, 흉내야말로 모든 배움과 실천의 계기나 소박한 출발일 수 있다는 사실과, 한 동안의 흉내로
얼마든지 비슷한 성취감을 나누고 맛볼 순 있을 것이다. 농사가 미술을, 미술이 농사를 서로 동경 하면서 닮아갈
수도 있다. 닮아간다는 사실은 자신을 낮추고 열린 마음의 이끌림을 품고 있다는 것이기도 하지만, 자신을 돌보지
않고 자존심을 희석하고 훼손하는 공허한 마음의 소산일 수도 있다.
그러면 우리에게 보다 소중한 것은 무엇인가.
시대가 달라지고 감성이 달라졌다 해도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우리의 ‘먹거리’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문제는
무엇보다도 먹거리를 생산하는 농사의 근본적 자존심이 오늘날 심히 훼손 되어 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어찌보면 현대는
'먹거리'가 바로 ‘볼거리’에 치인 형국이다. 이는 근대적 ‘대중’의 출현에서 제외 되었던 농민의 정치적 위상과도
일치한다.
사실 먹거리는 볼거리와 마찬가지로, 한 집단(민족)의 정신활동에 미치는 영향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을 것이다. 식생활의
바탕(무엇을 먹고 사느냐)은 곧 문화 의식 활동을 결정지울 수 있다. 음식 문화와 민족 정서를 분리하여 볼 수
없다는 말이다. 즉, 한 민족이 어떻게 먹고 사는가라는 농경제 문화구조는 구체적으로 무엇을 먹고 사는 민족이냐에
달렸으리란 말이다.
이점은 볼거리 경우에서도 마찬가지 일 수밖에 없다. 한 집단의 볼거리가 어떤 것 인가에 따라 그 집단 구성원의
정서 형성에 영향을 미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새삼스럽게 먹거리 농사와 볼거리인 미술의 생태가 서로 닮았다는
것을 우리는 인정해야 한다. 우리는 이런 닮은 현실에서 서로의 자존심을 나눌 필요가 있다고 본다.
또 다른 하나의 문제로 농사와 미술이 닮은 현실은, 농사도 미술의 활동적 측면(볼거리/관객)과 마찬가지로 불특정
다수의 먹거리 수혜자를 꿈꾸고 있다는 사실이다. 농사도 미지의 누군가를 향한 지향성을 소중하게 여긴다는 점에서,
또는 생명의 순환 구조 위에 자신의 노동과 꿈을 실린다는 점에서 미술과 농사는 얼마든지 닮아 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현대 미술이 중성적 화랑공간을 박차고 생생한 생활공간으로 그 체험과 실천의 장을 확장하고자 한데는 여러 이유와
곡절들을 지니겠지만, 무엇보다도 생명과 같은 순환과 생성-소멸의 원리를 흡수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이를테면,
대지와의 감응과 물, 불, 공기와 같은 기운의 운동 생태를 구현하는 경향성을 드러내고 있다는 말이다. 이런 점에서도
현대 미술은 농사의 생태와 닮아간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바로 그렇기 때문에 오늘의 미술은 농경의 태도가 무시되는 자리에 ‘공동체적 터나 장소적 의미(상호적 문맥)’를
더욱 천착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글을 쓰고 있는 지금, 저녁 뉴스는 올해도 풍작이지만 쌀의 재고량이 몇 년 째 엄청나게 늘어가고 있는데, 다시
쌀을 수입하지 않을 수 없는 정부의 입장을 밝히고 있다. 어쩌다가 이렇게 먹거리가 수난을 격고 애물단지가 되었는가.
지역 공동체의 산물인 먹거리를 마다하고, 전 지구적 먹거리를 선호하는 시대적 입맛이 쌀의 소비량을 농사의 위기로
내몰고 있는 이 현실은 더욱 생활 문화 공동체로의 터와 먹거리와 우리 감성의 상관성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한다.
* 이 글 속에 나타나는 자연 개념에 대해서는 김 용옥 교수와 생명철학자인 그레고리 베이트슨, 농부이면서 지역
사가인 박 문기씨의 저서 "숫가락"을 본 나름의 감화와 결과가 있음을 알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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