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항에서 순화(馴化)로? ---자존심에서 타존심으로?
                                                                  홍 명 섭(미술인-한성대학교 교수)

교수-작가, 일별 모순/일리 있어 보이는 이 역할-구분에 대한 의문보다 선행하는 문제가 있을 것 같다. 어떤 것일까? 우리의 미적 정서조차 자발적인 것이 아니라 교육과정을 통한 사회적 산물이라는 부르디외의 지적은, 이 땅의 문화 계급들을 편가르는 무의식적 전제들이 어떻게 형성되고 있는 것인가를 주목-분석해야 할 것을 경고한다. 이는 화단과 미술교육 현실을 돌아볼 때, 교수-작가라는 간극에 선 존재가 바로 이런 현실을 의식하지 못하거나, 무시하고 있는 곳에서 주변의 과잉 선망/비난을 모면하기 어려웠던 것이 아닐까.
지금 미술대학 교수는 무엇을 고민하고 있는가/있어야 하는가. 이 문제는 다시, 오늘 날 미술가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라는, 얼핏 구태의연한 듯 하지만 전혀 새로운 맥락에서 접근해야만 하는, 미술의 생존 전략을 논하게 되는/논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이는 얼마 전 까지만 해도 고집스레 현실과 갈등, 저항하며 묵묵히 빚어내고 그리는 의연한 모습으로, 즉 교환 방식보다는 생산(제작)중심주의에 자존심을 모아 이 좁은 미술 판에 연연하지 않는, 그런 작가적 태도의 여부에 걸린 문제가 아니라는데 문제가 있다. 이런 문제는, 언제까지 미술관과 통상적 <벽>이라는 직립공간 개념만을 목표로 한 미술을 교육할 것인가 하는 구체적인 의제와도 내통한다. 어쩌면 이제 미술의 길은 지금까지의 미술사와 결별하고 길 없는 길을 가야하는 형국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모던 아트가 미술의 내적 담론에 문제를 제기하고 반성한 것이라면, 이미 우리가 교육/감당 해야할 미술은 미술 자체의 작동의 위기에 걸린, 미술 생산구조 자체의, 출구를 잃은 배설의 적체 현상에 질식한 미술의 노선을 포기해야하는 곳에 와있는지 모른다.
몇 년 전 까지만 해도 이 땅의 미술대학 교수의 기본적 자격이나 자질을 운위할 때, 교육자로서 어느 정도의 양식과 양심, 또는 연구와 교육에 임하는 성실한 태도나 업적 정도가 요구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를테면, 항간에 떠도는 임용 비리나 입시 부정, 공모전 나눠 먹기씩 심사나, 누구누구처럼 미대교수로써 젯밥에나 핏발을 세우는 행태들-- 또는 우리의 선배들처럼, 조형물 제작을 위한 로비나 자기 그림 팔아먹기에만 정신 팔려 재벌 부인들의 치마폭을 맴돌거나, 화단권력을 밀고 당기는 로비스트로의 모습이 우리들의 비난 정도의 대상이었다. 나아가서 입시 제도를 개선 할 줄 모르는 방만한 의식 정도가 질타-비판받아 왔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이제는 이런 항목 정도에 매달리는 비판의식도 구태의연하기는 마찬가지라고 본다. 왜냐하면, 도리를 벗어난 비리나 교육에 몰성의한 태도로부터 그래도 자유로운 양심과 열정은 그런 대로 미대교수의 면죄부로 인식될 수 있었든, 그런, 지금까지 안심했던 입장조차도 쉽게 모면할 수 없는 새로운 상황이 도래했기 때문이다. 그것은--내가 정작 비판하고 싶고, 나 자신부터 비판받아 마땅하다고 보는--이제 윤리적 차원으로 비판 할 범주 이상의 사태로 도래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지금까지 막연하게 이어져온, “전문적인 작가 양성”이라는 미술대학의 추상-일반적 교육목표야말로 그 동안 우리의 교육자적 자질 문제를 추월하여 보다 심각하게 우리의 앞에 다가오기 시작했다는 말이다. 이런 문제는 해방이후 아직도 식민지적 의식으로 근대화된 교육의 장에서 강력하게 대두된 적인 없었던 오늘의 새로운 미술 교육적 문제의 등장과 그 가늠으로 보아야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소위 순수 미술학과의 교육목표는 누가 뭐라도 ‘전문작가의 양성’이라는 명분에 있었다. 여기서 말하는 작가란, 시대적 감성이 무엇을 꿈꾸고 있건 기존의 미술 풍토에서 통용되고 있는 모습의 잠재적 작가 군을 재/생산하는, 그래서 이 사회적/시대적 전망과는 별 무관하게 겉도는, 고독과 핍박에 찌들어 가는 일군의 사회적 피해의식의 주체들이란 점에 별반 이의가 없을 것 같다. 따라서 웬만해선 미술대학 교육의 타성적이며 자폐적인 목표는 은연중에 이런 유형의 인간을 무책임하게 길들이고 양산하는 사태를 벗어나기 어렵게 되어간다는 말이다. 그러나 경쟁과 효율-성장 일변도의 경영으로 세계화 되가는 신 자본주의의 대세 속에서 오늘을 진보라고 낙관할 수 없는, 문화적 지표가 혼재된 현대는 과연 다양성을 고취하고 있는가 아니면, 세계를 단일 브랜드로 조장하는 신 제국주의적 현상인가가 의심되는 속에서, 소위 미술가란 과연 어떤 일을 하고, 어떻게 살아가는 사람을 말하는가. 21세기 미술의 길이란 대체 어떻게 표현의 새 지평을 가늠하며, 어디로 풀려나가야 하는 것인지를 복합적으로 새롭게 논하지 않을 수 없게 이 세상이 돌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철학적 분리주의 인식이 집착했든 ‘본질-실재’와 ‘현상-표현’이라는 배제-분리의 신화는 깨어졌다. 행위의 과정으로 드러나는 ‘표현’이라는 결과물들은 결코 환원될 '본질'이 있을 수 없다는 점을 깨닫게 된 것이다. 이런 점을 20세기 벽두에서부터 가장 민감하게 선구적으로 깨우치고, 직관으로 수행했든 것이 현대미술의 삶이었다고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 근대화된 여러 학문과 예술 영역에서 이토록, 단연 선구적인 비판적 감성으로 새로운 영감과 감응을 주도하던 현대미술의 아방가디스트적 영향력은 몹시 위축되기 시작했다. 더 이상 미술에서 아방가르드 정신이 싹트기 어렵게 정보와 다채로운 시각매체들이 전지구적으로 발 빠르게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로 인해 )새로운 매체적 사고에 부응하는 문화적 패러다임과 마침내는 순수미술의 문화적 기능조차 외면 당하고, 문화적 계급의 불평등 분배 현상을 바탕으로 논해야할 것이 있다. 이를테면, 새 미디어들의 출현을 반기고 도입하여 미술에 응용하는 정도의 대중적 폭을 긍정할 단순한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어떻게 하여 시대적 요청과 감성을 이끌 ‘아트웨어’를 창출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문제의식은, 연대기적인 인과적 감성의 흐름에 기대어 왔던 마인드로는 피어나기가 불가능한 것인지도 모른다. 또한, 멀티미디어에 의한 정보 문화생활상의 변모와 더불어 이야기 하여야 할 것은, 전 세계가 동시에 신자유주의 현상이라는 거대한 자본의 그물에 엮이어 가는 세상이 되고부터 미술 교육은 과연 무엇을-왜 꿈꾸어야 하는지, ‘노-하우’의 문제보다 앞선 ‘노-화이(know-why)’라는 잊혀진 망령을 다시 불러내어 달래보아야만 할 지경이 아닐까. 미술의 사회 환경적-지역적 기능과 의미는 세계화의 경향 속에서 어떤 분절을 겪어야 세상과 새로운 교감의 변이가 가능한지 우리 모두가 머릴 맞대지 않을 수가 없다. 이와 같은 문제의식은 기왕의 서구(국제적)의 미술계도 마찬가지겠지만, 우리에게 더욱 암담한 문제는, 미술교육이나 문화정책을 입안하든 기득권 층의 마인드로는 감당은 물론 전망조차 하기 힘들 것이란 점이다. 이제 미술은 불행하게도 미술인 들에 의해, 내부에서부터 스스로 개혁되기 어렵게 되어간다는 전망이다. 즉, 미술이 지금껏 타자화 하였던 곳에서 미술은 알 수 없는 얼굴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하는, 미술자신의 존재방식부터 의심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미 미술은 자신을 비판할 용어를 갖고 있지 못한 것일 지도 모른다. 미술교육의 새로운 목표는 미술인 들에 의한 자가논리적 반성 차원 정도에서 기대할 수 있는 그런 개선의 폭과는 거리가 먼, 이해와 해석으로 범주화되지 않는 곳에서 탄생하는 돌연한 변종의 꿈을 꾸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것은 마치 효율위주의 경영 일반 신화에서도 일탈하는, 언더그라운드로 피어날 ‘이반(二般)의 미술교육’이 되어야 할지 모른다.
돌아보면, 미술이 아닌 다른 분야에서야말로 더욱 새로운 실험정신이 발효되고, 신 개념이 개척되며 새로운 담론이 형성되고 있는 이 때, 미술이야말로 여타 분야의 뒤꽁무니를 좇아가지 않을 수 없게 돌아가고 있는 형국이 아닌가. 이를테면, 이미 오래 전에 대체의학이 나오고, 한방과 양방이 한 환자를 두고 만나고 있으며, 질병에 대한 개념조차 달라져가고 있다. 질병을 근절의 대상이 아니라 다스림의 대상으로 보게 된 전혀 새로운 접근은, 질병자체가 생명의 본래의 모습이자 삶의 한 양상으로 파악하기에 이른 것이다. 의학이라는 하나의 분야를 잠깐만 넘겨다보더라도, ‘대결’의 의학에서 ‘사귐’의 의학으로 뒤바뀐 이런 엄청난 변화는 질병이 새로운 진화의 시발점이기도 하다는 반의학적 위상의 발견이라는 일탈적 탐구에서 비롯한다.
그러나 미술은 무엇을 새롭게 이루어 낼 수 있을까. 기존의 미술에 대한 관념은 어떤 전복의 도전을 의식하고 있는가.
자신의 환경을 자신이 산출하는 힘에 의해 자신의 환경 일부와 대사 관계(새로운 에너지 교환 기제)를 계발하는 생명체들의 ‘구조접속(structural coupling)’을 수행하는 생태계를 닮아야 되지 않을까. 그래서 끊임없이 새롭게 자기 위치를 상호작용의 그물 속에 끼워 넣는 역동성을 배워야 하지 않을까. 우리들의 지금까지의 상식과는 달리, 생명체는 손해와 이익이라는 저항과 경쟁을 바탕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환경과 만나 ‘적응을 보존하는’ 개체가 살아남는 것이란 점을 유심히 돌아보아야 할 것 같다. 이것은 실로 ‘자연적 표류’를 통해 개체적인 것과 집단적인 것 사이에 균형이 생긴다는 점에서 문화인류학적 모델이 되어야 할지도 모른다.
오늘의 미술대학의 문제는 무엇보다도 교수 자신들의 교육 부터를 문제 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우선 나 자신부터 추궁하는 의미에서 다음과 같은 시안을 바탕으로, 미대 교수의 재교육의 장을 마련할 것을 삼가 제안해본다.

-- 미술의 위기와 교육의 위기가 겹쳐지는 자리에서 돌아 보아야 할 대략의 범위 --
-미술가 상의 교육적 전망.
-상호수요적 미술교육---일방적 불/합격 경계를 넘는 상호적 입시 선발 --공개 면담 위주 의 지원자/선발자가 상호 선택하는 입시제도 프로그램 개발.
-실기교육에서 평가의 기술적 문제--절대적 평가의 기준이 분산된 시대의 크리틱의 성립 기준의 무/의미론과 개방성문제 - 연구 사례 교환/발표.
-실기교육 담당자의 새로운 유형 발굴/제시-- 작가(교수)가 작가(학생)를 이해하고 소통하 는 관행적 언어와 감성의 점검.
-미술대학의 커리큘럼 개발/개조의 문제.
-미술사에 대한 담론 고고학-계보학적 접근.
-지식정보사회의 사회-정치 환경론 강좌.
-공간론에 대응하는 장소론 강좌.
-미술교육에서 ‘쓸모’와 ‘순수’이념을 가로지르기; 미술관객에 대한 새로운 정의 ; 사용자; 관객과 주문자.
-‘아트웨어’의 다기화 된 소비-유통적 전망.
-미술의 교환방식이 이끄는 생산 형태--미술과 사회와의 관계 재정의 시도.
-감성공학, 생명공학, 환경공학과 미술, 물리주의와 미술 등을 주제로 세미나 형태의 수업을 정규 교과과정으로 개발-수용 기타.
-미술행정론과 미술경영 시각의 특강 수업 도입.
-자본과 미술. 세계화와 지역.---미술에서의 글로칼리제이션, 그 가능성과 의미.
-미술 속의 탈/식민주의, 오리엔탈리즘/옥시덴탈리즘, 국가-국민주의, 페미니즘 강좌

* 위 글은 <월간미술>로부터, 오늘의 미술대학 교육의 현실에 관한 원고 청탁을 받아 당 월간지 2002년 6월호에 기고 하였던 것임.